어릴 적에는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가 육상을 시작했다. “뛰니까 숨이 차서 힘들었”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체력이 좋아지고, 하다 보니 승부욕도 생겼다.” 16살 때 지인이 펜싱을 권유했다.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칼을 잡았다. “잡고 찌르는 느낌이 좋았다.” 몸을 많이 움직이면서 상대의 빈틈을 노리고 공격해서 점수를 내는 것에 쾌감 또한 느꼈다. 휠체어펜싱 국가대표 권효경(23·홍성군청)의 이야기다.
권효경은 생후 6개월에 뇌병변장애 판정을 받았다. 미술, 육상을 거쳐 휠체어펜싱을 시작한 게 2016년이다. 휠체어펜싱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비장애인 펜싱과 다르게 휠체어를 프레임 위에 고정한 채 경기를 해서 하체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다. 이 때문에 순간적인 빠른 스피드가 중요하고 상대를 속이는 고도의 심리전도 필요하다. 권효경의 주종목은 에페. 상체 모두가 유효 타깃이고, 어느 선수든 먼저 찌르면 득점이 된다.
소속팀이 있는 홍성군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는 그는 마음에 응어리가 생기면 엄마에게 전화한다. 권효경은 “엄마가 희망적인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 가족들과 소통을 자주 하는 편인데 내가 펜싱 하는 모습을 정말 좋아해 준다”고 했다. 3살 위 언니도, 비장애인인 쌍둥이 동생도 모두 그의 든든한 응원군이다. 하지만, 파리패럴림픽 경기 중에는 집에 일절 전화를 하지 않았다. 대회 중 전화를 하면 꼭 중요한 순간에 잘 안 풀리는 징크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 4일(현지시각)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플뢰레 패자부활전 3라운드에서 떨어졌을 때 권효경은 취재진 앞에서 다짐했었다. “경험이 계속 쌓이고 있으니까 에페에서는 꼭 메달을 따겠다”고 했다. 첫 종목 사브르에서 12위, 플뢰레에서 8위를 했던 그였다. 그리고, 6일 열린 주종목 에페 개인 4강전에서 2020 도쿄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아마릴라 베레스(헝가리)를 꺾고 당당히 결승에 올랐다. 메달을 확보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한국 휠체어펜싱은 1988 서울패럴림픽에서 금메달 3개와 은메달 1개를 따냈다. 이후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서 동메달 1개를 따낸 뒤 패럴림픽 메달이 지금껏 하나도 없었다. 비록 권효경은 결승전에서 중국의 천위앤둥에 6-15로 패했지만 한국 휠체어펜싱에 28년 만에 메달을 안겼다. 은메달은 무려 36년 만이다. 패럴림픽 첫 출전에서 이뤄낸 쾌거다. 비록 결승에서 졌지만 권효경이 경기 직후 아주 환하게 웃은 이유다.
권효경은 경기 뒤 취재진과 만나 “패럴림픽 첫 메달이다. 상상도 못 한 메달이어서 기분이 아주 좋다”면서 “다음 패럴림픽에 한 번 더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메달을 더 따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는 이어 “사브르나 플뢰레 성적이 사실 아쉬웠다. 그냥 메달을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즐겁게 하자는 마음으로 했는데 이렇게 돼버렸다. 후회 없이 한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한국 휠체어펜싱 사상 36년 만에 최고 성적을 냈다는 말에는 “제가 이런 기록을 내다니 광대가 올라갈 정도로 기분이 너무 좋다”고 했다.
가장 기쁜 순간에 제일 많이 생각나는 이는 물론 부모님과 가족이다. 권효경은 “부모님이 (한국에서) 걱정하시면서 지켜보셨을 것 같다. 이제 연락을 드려야겠다”고 말했다.
권효경은 ‘나비 검객’으로 불린다. 그의 왼팔에 작은 나비 문신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나비 문신은 ‘새로운 시작’, ‘변화’를 의미한다고 한다. 파리패럴림픽을 통해 훨훨 날아오른 권효경은 이런 말을 했었다. “펜싱을 하다 보니 이런저런 일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마음의 여유도 생겼고, 내 세상도 더 넓어졌다. 그래서 펜싱은 또 다른 내 인생의 첫걸음인 것도 같다. 스스로 운동을 좋아하면 장애와 상관없이 적극적으로 행동했으면 좋겠다. 움직여야만 기회가 생긴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못 잡는다.”
권효경은 움직였고, 당당히 패럴림픽 은메달을 움켜쥐었다. 그 기회는 물론 권효경, 스스로 잡은 것이었다.
파리/김양희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