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티 셰플러(왼쪽)가 5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근교 도시 매키니의 TPC 크레이그 랜치(파71)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더CJ컵 바이런 넬슨(총상금 990만달러)에서 우승한 후 아내 메러디스(가운데)와 아들 베넷을 들어 올리며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셰플러는 이 대회에서 최종 합계 31언더파 253타로 2위 에릭 null 8타 차로 따돌리며 완벽한 우승을 일궜다. 댈러스(미국) ㅣAP 뉴시스
CJ컵 바이런 넬슨 대회에서 스코티 셰플러가 31언더파로 우승했다. 챔피언 조에서 같이 플레이한 null 마지막 라운드에서 8언더파를 쳤지만, 셰플러와의 간격을 한 타도 좁히지 못했다. 셰플러는 자기 고향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2025년 첫 승을 신고하면서 2주 앞으로 다가온 PGA 챔피언십에서 로리 매킬로이와의 팽팽한 대결을 예고했다.
대회 주최 측인 CJ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대회 중요도는 상금 규모, 역사 등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어느 선수가 참가하는지도 중요하다. 타이거 우즈를 참가시키기 위해 거액의 출전비를 지급한 대회도 많았다. 지금은 스코티 셰플러와 로리 매킬로이의 출전 여부가 중요하다. 이들 중 한 명만 참가해도 훨씬 중요한 대회가 된다. 어쩌면 상금, 역사, 유명 선수보다 중요한 것이 대회 정체성일지 모른다.
메이저 대회도 아니고, 시그너처 대회도 아니며, 유명 선수가 많이 참여하는 대회도 아니지만 골프 팬을 강렬히 사로잡는 대회가 있다. WM 피닉스오픈이다.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이 대회는 매년 70만 명이 찾는 최대 규모의 골프대회다. 콜로세움처럼 구성된 홀에서 벌어지는 관중의 열띤 응원과 쓰레기 투척은 독특한 전통이 되었다. 쓰레기 처리 회사인 WM은 골프 팬 사이에서 글로벌 탑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CJ컵 시작 전부터 셰플러는 만두를 비롯한 한국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고, 한국 음식으로 입맛을 돋운 후에 첫날에만 이글을 포함해 10언더파를 쳤다. 둘째 날 전반 홀에서 지루한 파 행진을 이어간 그는 비로 중단된 여섯 시간 동안 한국 음식을 먹고, 후반 홀에서 버디 행진을 이어 갔다. 1, 2라운드에서 보기 없는 경기로 앞서 나간 그는 이후에도 2위와의 간격을 좁혀줄 의사가 없었다.
그의 드라이버 페어웨이 적중률은 참가 선수 중 가장 높았다. 드라이버 낙하지점의 페어웨이 폭은 25야드 내외로 좁았지만, 페어웨이를 찾아가는 그의 능력은 특별했다. 간혹 페어웨이를 벗어나더라도 러프에서 그린을 공략하는 것이 그에게는 어렵지 않아 보였다. 아이언 샷은 언제 어디서나 핀하이였다. 핀하이(pinhigh)는 공을 친 지점에서 볼 때, 공이 핀과 같은 지평선 상에 있다는 의미다. 퍼팅 시에는 뒤에서 라이를 바라보고 퍼팅라인 중간과 마크 위에서 목표 지점을 확인한 후에 공을 정렬하고 퍼팅했다. 그의 퍼팅 루틴은 안정감을 주었다.
마지막 라운드 9번 홀에서 티샷을 벙커로 보낸 그는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을 정도로 드라이버로 땅을 치며 화를 냈다. 샷 하나하나의 완성도가 우승보다 중요해 보였다. 벙커에서 236야드를 남겨 놓고 친 페이드 샷이 그린에 올라갔고, 이글로 전반 마지막 홀을 장식했다. 코스 레코드, 72홀 최저타와 싸우는 것처럼 보인 그는 2위와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를 지배한 것은 집념이었다.
스코티 셰플러가 5일(한국시간) 텍사스 주 매키니에서 열린 CJ컵 바이런 넬슨 골프 토너먼트 최종 라운드 3번 홀에서 티샷을 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대회 주최측인 CJ의 광고판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대회에서 중계 해설자들은 한국 음식에 관한 이야기로 중계를 풍성하게 만들었고, 한국 음식의 세계화에 큰 기여를 했다. 댈러스(미국) ㅣ AP 뉴시스
우리나라 선수들은 1, 2라운드에서 좋은 조에 배정되었고, 카메라도 한국 선수의 활약을 특별히 많이 비춰 주었다. 덕분에 우리 선수들의 경기력이 전 세계 골프 팬에게 잘 전달되었다. 골프 코스 곳곳에 설치된 CJ 비비고 광고판을 볼 때마다 채소 왕만두가 생각났다. 녹색 간판은 골프 코스와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해설자들은 한국 음식에 관한 이야기로 중계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한국 음식이 CJ컵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
같은 기간에 송도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LIV 대회를 우승한 브라이슨 다샘보는 “한국 바비큐를 정말 좋아하고, 갈비도 환상적이다. 한국 음식을 위해서라도 한국 대회를 계속 찾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맛있는 음식은 우리 골프를 더욱 즐겁게 만든다. 그늘집에서 먹는 수박, 중간에 마시는 막걸리와 파전, 클럽하우스의 고급 음식, 골프 코스 주변의 맛집은 우리 골프의 고유한 특징이다. 조금 비싼 것이 문제지만, 어차피 우리 골프는 그 외에도 비싼 편이므로 이것은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골프의 정체성으로 만들어야 할 요소일지 모른다.
셰플러의 놀라운 경기력이 CJ컵을 빛나게 했는데, 그 동력에 만두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 한식이 우리 골프를 즐겁게 해준다면, 우리 골프는 그에 대한 화답으로 한식 세계화에 공헌해야 한다. CJ컵 바이런 넬슨에서 그런 가능성을 보았다.
윤영호 골프 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골프: 골프의 성지에서 깨달은 삶의 교훈’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연제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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