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호는 경기가 끝난 뒤 두 손을 하늘 위로 뻗었다. 헛구역질을 할 만큼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경기였다.
배드민턴 혼합복식 김원호(25)-정나은(24) 짝이 숙명의 집안싸움에서 승리해 결승전에 진출하게 됐다. 서승재(26)-채유정(29) 짝은 동메달 결정전에 나서게 됐다.
두 팀은 8월 1일 저녁(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포르트라샤펠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준결승에서 만나 치열한 접전을 벌였지만, 승리는 김원호-정나은 짝에게 돌아갔다. 김원호-정나은 짝은 게임 점수 2-1(21:16/20:22/23:21)로 서승재-채유정 짝을 가까스로 누르고 결승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서승재-채유정 짝이 역대 전적에서 5승무패로 앞섰지만, 이날 경기는 상대 전적이 무의미할 만큼 치열했다. 3게임 중 2게임이 듀스 끝에 결정될 만큼 양 팀은 피 말리는 접전을 벌였다.
1게임은 김원호-정나은 짝이 먼저 따내며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5-5 상황에서 김원호가 3점을 연이어 따내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려 11점에 먼저 도달했다. 김원호는 전위 공격을 주도하면서 19-14 상황을 만들었고, 막판 채유정의 헤어핀이 네트를 넘지 못하면서 20점 고지를 먼저 밟았다.
2게임 중반까지 양 팀은 1∼2점 차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20-20 듀스까지 이어진 접전 끝 정나은의 공이 네트에 걸렸고, 서승재의 드롭샷이 득점으로 연결되면서 양 팀의 승부는 3게임으로 이어졌다.
마지막 3게임에서도 접전은 이어졌다. 게임 초반 채유정의 네트를 활용한 전위 공격이 살아나면서 서승재-채유정 짝이 4점 차 리드를 잡기도 했지만, 김원호가 무섭게 따라잡으면서 양 팀은 18-18 동점 상황을 맞이했다. 이후 두 팀의 승부는 21-21까지 이어진 듀스전 끝에 김원호-정나은 짝이 결승에 진출하게 됐다
김원호는 경기가 끝난 뒤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나 “(서승재-채유정 짝이) 한 수 위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좀 더 파이팅이 있고, 활기차게 적극적으로 뛰려고 했다.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은이가 잘 이끌어줘서 마지막에 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어릴 때부터 엄마의 금메달을 보면서 (결승) 무대를 꿈꿨는데, 이게 정말 이뤄질지는 몰랐다. 이렇게 올라왔으니, 일단 빨리 받아들이고 마지막 도전을 후회 없이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원호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 혼합복식 금메달리스트인 길영아 현 삼성생명 감독의 아들이다.
김원호는 이날 경기 도중 헛구역질이 나올 만큼 절실하게 뛰었다. 수비를 하는 데도 몸을 아끼지 않았고, 오른쪽 무릎에 붕대를 감는 투혼도 불살랐다.
결승에 진출한 김원호-정나은 짝은 이번 대회에 가까스로 토너먼트에 진입했다. 조별리그에서 1승2패를 기록했지만, 게임 득실에서 앞서 8강 무대를 밟았고, 말레이시아를 꺾고 준결승에 올랐다. 김나은은 예선전부터 4강에 오르기까지 과정을 놓고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결승전과 동메달 결정전은 한중전, 한일전으로 확정됐다. 김원호-정나은 짝은 중국(세계 1위)의 정쓰웨이-황야충과 금메달을 놓고 일전을 치른다. 이미 조별예선에서 한번 만나 패한 경험이 있지만, 결승에서 설욕할 기회를 얻었다. 김원호는 “예선전에는 조금 안 되는 게임을 했지만, 결승전은 다를 것”이라고 예고했다.
서승재-채유정 짝은 일본의 와타나베 유타-히가시노 아리사 짝과 동메달을 놓고 일전을 치른다. 태극 전사 두 팀 모두가 승리하면 한국 배드민턴은 금메달과 동메달을 동시에 따내는 겹경사를 맞이하게 된다. 특히 2008 베이징올림픽 이후 끊긴 한국 배드민턴의 금맥도 다시 잇게 된다.
한편, 김가은은 이날 여자 단식 16강에서 인도네시아의 그레고리아 마리스카 툰중를 만나 게임 점수 1-2로 패하며 8강 진출이 좌절됐다.
장필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