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제 ‘낡은 꿈’이에요.”
어린 시절, 일본 야구 애니메이션 <메이저>를 보고 야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 즉시, 3살 터울 친오빠와 함께 캐치볼을 하며 자라왔다. 그러나 여학생으로서 야구 선수의 꿈은 언감생심. ‘야구하는 여성’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는 그렇게 이룰 수 없는 꿈을 갖고 어른이 됐다. 그래서 그가 야구를 ‘낡은 꿈’이라고 지칭하는 이유다.
그랬던 그가 대학생이 돼서야 사회인 여자야구팀과 이들을 기반으로 한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이 운영된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고, 국가대표를 꿈꾸게 됐다. 치열한 노력 끝에 올해 초,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에 처음 승선한 20대 초반 젊은 좌투수는 이러한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로 만들어 ‘낡은 꿈’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국가대표 좌투수 장채원(22)의 얘기다.
“여자야구가 있는지도 몰랐고, 제가 선수로 뛰는 게 아예 상상이 안 됐어요. 나이는 점점 먹어가니까 ‘야구’는 마치 이룰 수 없는 꿈, 너무 오래 된, 힘든 꿈 같았죠.”
피아노, 기타, 노래에 재능이 있는 장채원은 이러한 심경을 고등학생 때 이미 노래 가사로 담아냈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넣어 보완해 2025년 상반기에 발매할 예정이다.
야구도, 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도 올해 그 꿈을 어느 정도 이룰 수 있었다. 바로 여자야구 대표팀에 전격 발탁되면서부터다. 장채원은 흔치 않은 왼손잡이 투수라는 게 장점으로, 구속은 빠르지 않지만 안정적인 제구를 바탕으로 대표팀 허일상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장점이 빛이 난 순간은 바로 지난 8월 17일, 화성 드림파크에서 열린 ‘2024 화성 여자야구 국제교류전’에 등판하면서부터다. 그간 약간의 부상으로 인한 재활 등으로 실전 등판을 거의 하지 못한 장채원은 이날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산하 여자야구 실업팀과의 경기에 구원 등판했는데, 일본 내에서도 최상위팀인 요미우리 산하 여자팀 주전 선수들을 상대로 2이닝 동안 삼진을 두 차례나 잡아냈다. 이날 등판한 대표팀 투수들 중 가장 돋보이는 성적이었다.
경기 후 장채원을 향한 호평이 줄이었다. “꿈에 그리던 데뷔전에서 칭찬을 많이 들어서 뿌듯했다”라며 웃은 그는 “다들 제 실력이 많이 늘었고, 특히 제구가 좋았다고 해주셨다”라고 말했다. 그는 “집중을 정말 많이 하면서 던졌다. 무조건 스트라이크를 집어넣어 이 경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라고 했다.
직구와 커브 단 두 구종으로 승부를 본 장채원은 좌투수라는 이점을 살려 1루 견제도 준수하게 해내며 일본 선수들의 발을 꽁꽁 묶어 놓았다. 그 역시 장점을 살리면서 대표팀 투수진의 ‘믿을맨’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장채원은 “견제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잡는 연습을 하고 있고, 구속도 더 늘리고 있는 중이에요”라고 귀띔했다.
‘꿈은 도망가지 않는다.’
장채원의 좌우명이다. 꿈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도망가는 건 언제나 나 자신이다. “대표팀 모자에 써놓은 글귀이기도 하다. 스스로 먼저 포기하기 싫어서 그렇게 적어놨다”라고 한 그는 앞으로의 인생도 스스로 먼저 포기하지 않고 살겠다는 각오다. 항상 그래왔다. 사랑도, 꿈도, 인생도. 모두 어렵지만 치열하게 도전하고 이뤄왔다.
또 하나의 도전이 예정돼 있다. 바로 ‘싱어송라이터’ 데뷔다 . 대학에서 실용음악과를 전공한 장채원은 ‘채원’이라는 예명으로 오는 30일 < Fall In Autumn >(폴 인 어텀, 가을에 빠지다)라는 디지털 싱글을 발매한다. 가을에 불현듯 찾아온 어느 한 시절, 한 순간을 서정적인 멜로디로 담아냈다.
야구선수로는 오는 2025년도 가을, 중국에서 열릴 예정인 아시아야구연맹(BFA) 주관 ‘2025 여자야구 아시안컵’ 출전 의지를 다졌다. 장채원은 “모두가 인정하는 그런 투수가 되고 싶다”라며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꿈을 다 펼치고 오겠다고 말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야구 국가대표인 장채원은 여자야구 대표팀 테마곡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 선수들은 직업 운동인이 아니다. 본업을 하며 주말마다 모여 야구를 하는 사회인 선수들이다. 그래서 저마다 사연이 있으니 이들의 이야기를 한 소절씩 담아내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에 장채원은 씩 웃으며 “좋다. 대표팀 생활을 오래오래 하면서 선수들과 더 친해져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곡을 꼭 한번 만들겠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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