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동계스포츠는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33개, 은메달 30개, 동메달 16개를 따냈다. 이 중 쇼트트랙이 따낸 메달이 금메달 26개, 은메달 16개, 동메달 11개다. 전체 메달 대비 쇼트트랙 비중이 67.1%에 달한다. 여기에 스피드 스케이팅도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5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5개를 따냈다.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을 합치면 역대 올림픽 메달에서 두 종목이 따낸 메달 비중은 92.4%까지 올라간다. 두 종목의 성패에 따라 올림픽 전체 성적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도 이제 1년 앞으로 다가왔다. 2017 삿포로 이후 8년 만에 부활한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은 내년 열릴 올림픽의 전초전 성격이 강하다. 쇼트트랙과 빙속 대표팀은 하얼빈 대회에서 여전히 막강한 경쟁력을 확인함과 동시에 과제도 확인했다.
먼저 자타공인 세계최강인 한국 쇼트트랙은 하얼빈에서도 빙판을 지배했다. 종목에 걸린 9개의 금메달 중 6개를 싹쓸이했다. 전체 성적표는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3개로, 2017 삿포로(금5, 은3, 동3)를 넘어 역대 최고의 성과를 거뒀다. 쇼트트랙에서 한국의 최강국 지위를 가장 위협하는 중국의 홈인 하얼빈에서 열린 대회에서, 각종 ‘텃세’를 극복하고 거둔 성적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값지다.
2023~2024시즌을 통째로 쉬고 1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쇼트트랙 여제’ 최민정(성남시청)은 3관왕(2000m 혼성, 500m, 100m)에 오르며 여전한 기량을 뽐냈고, 최민정이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 여자 대표팀 에이스로 군림했던 김길리(성남시청)도 2관왕(2000m 혼성, 1500m)에 은메달 2개(500m, 1000m)를 따내며 뒤를 든든히 받쳤다. 남자 대표팀 에이스 박지원(서울시청)도 금메달 2개(2000m 혼성, 1500m), 은메달 2개(500m, 1500m)를 따내며 병역 문제를 해결해 내년 밀라노행을 위한 마지막 장애물을 치웠다.
게다가 한국 쇼트트랙의 유일한 약점인 단거리 500m에서도 경쟁력을 확인한 게 또 하나의 성과다. 여자 대표팀은 500m에서 최민정과 김길리, 이소연(스포츠토토)이 금은동을 싹쓸이했다.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여자 500m 금메달은 이번이 처음일 정도로 이례적인 쾌거였다. 남자 500m에서도 박지원이 은메달을 따내며 내년 밀라노에서의 메달 희망을 밝혔다.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도 금메달 3개, 은메달 5개, 동메달 4개로 금메달 2개 이상을 획득하겠다는 기존 목표를 초과달성했다. 다만 8년 전 2017 삿포로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3개, 동메달 3대를 따냈던 것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남는 성적이다. 게다가 빙속 강국인 일본이 이번 하얼빈에 2진급 선수단을 파견해 중국 외에는 딱히 경쟁 상대가 없었던 상황에서 거둔 성적이라 더욱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빙속의 가장 큰 과제는 중장거리 종목 세대교체다. 이번 하얼빈에서도 금메달 3개가 모두 단거리에서 나왔다. 여자 100m와 500m에서 유망주 이나현(한국체대)과 ‘신 빙속여제’ 김민성(의정부시청)이 금메달을 따냈고, 둘은 김민지(화성시청)와 함께 출전한 여자 팀 스프린트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중장거리 종목은 아직도 1988년생의 이승훈(알펜시아)이 간판일 정도로 세대교체가 더디다. 이승훈이 5000m에서 거둔 4위가 중장거리 개인 종목에서 거둔 유일한 눈에 띄는 성적이다. 이승훈은 “많은 유망주가 훈련량이 많고 힘든 중장거리를 꺼린다. 나를 넘어설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참 아쉽다”고 말했다.
중거리도 내세울 만한 선수가 없다. 간판이었던 김민석이 불미스러운 일로 징계를 받은 뒤 헝가리로 귀화했고, 한국 빙속은 그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했다. 중거리 선수 부재는 팀 추월 등 단체전의 경쟁력 약화로도 이어졌다.
한국 빙속이 아시아 최고의 위치에 올라서려면 훈련 환경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훈련을 할 수 있는 경기장은 서울 태릉 빙상장과 강릉 스케이트 오벌 뿐이다. 그러나 강릉 오벌은 사업성 문제로 얼음을 걷어내면서 경기장 역할을 잃었다. 태릉 빙상장은 태릉이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됨에 따라 철거가 예상됐으나 문화체육관광부의 제동으로 대체지 선정이 중단됐다. 한국 빙상계 관계자는 “현재 태릉 빙상장은 철거 이슈가 맞물리면서 제대로 된 보수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노후화 문제로 국가대표 선수들이 원활한 훈련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남정훈 기자 [email protected]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