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티 셰플러(미국, 왼쪽)가 8일(현지시각) 바하마 뉴프로비던스의 올버니 골프클럽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히어로 월드챌린지 정상에 올라 대회 주최자인 타이거 우즈와 함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셰플러는 최종 합계 25언더파 263타로 김주형을 6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뉴프로비던스(바하마) ㅣAP 뉴시스
페덱스컵 이후 휴식기를 가졌던 스코티 셰플러(미국·세계랭킹 1위)가 돌아오자마자 히어로 월드 챌린지에서 김주형(세계랭킹 21위)을 6타 차이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잭 니클라우스는 ‘드라이버를 똑바로 치는 것은 풀루크(속칭 후루꾸)다’라고 말해서 아마추어를 위로했지만, 셰플러는 우리를 위로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얼핏 보기에 균형 잡히지 않은 스윙으로 자를 대고 긋듯이 공의 궤도를 만들어 낸다. 너무 일관적이어서 도저히 풀루크라고 보이지 않는다. 그의 스윙은 직관과 본능에 기반하는데, 오랜만에 본 그의 피니시는 이전보다 더 자유분방해 보였다.
더 놀라운 것은 퍼팅 그립의 변경이다. 그는 15피트(4.57미터) 이내에서는 오른손을 집게 모양으로 한 후에 퍼터를 밀어주는 퍼팅을 하고, 그 이상의 거리에서는 기존의 퍼팅 그립을 유지할 예정이다. 마스터스와 올림픽을 포함하여 올해만 8승을 선사한 폼을 바꾸고 나온 것 자체가 의외지만, 변화를 준 그의 퍼팅은 더 안정적으로 보였다. 내년이 올해보다 기대되는 이유는 그의 유연한 태도 때문이다.
3라운드에서 10언더파를 치면서 셰플러를 위협했던 김주형은 프레지던츠컵과 제네시스 챔피언십을 통해 성장하고 단단해진 것처럼 보였다. 스윙은 기계처럼 정확하고 견고했지만,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하는 것은 그의 퍼팅이다. 그는 아마추어가 따라 해 볼 만한 퍼팅 루틴을 가지고 있다. 깃대를 향해서 양발로 라이를 확인하고, 돌아서서 다시 양발로 라이를 확인하고, 손가락으로 타깃 지점을 분별하며, 퍼터를 들고 공을 태워 실을 지점을 확인한다. 그런 과정을 거친 그의 퍼팅은 거리와 상관없이 성공할 것만 같다. 김주형은 프레지던츠컵에서 충돌한 패트릭 캔틀레이와 이번 대회 3라운드를 치렀는데, 모든 면에서 캔틀레이를 압도하는 장면이 보기에 좋았다.
김주형이 8일(현지시각) 바하마 뉴프로비던스의 올버니 골프클럽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히어로 월드챌린지 최종 라운드 11번 홀에서 퍼트를 놓친 후 아쉬워하고 있다. 김주형은 최종 합계 19언더파 269타로 스코티 셰플러(미국)에 6타 뒤진 준우승을 차지했다. 뉴프로비던스(바하마) ㅣAP 뉴시스]
저스틴 토마스도 우승 경쟁자였는데, 그의 폼이 돌아오고 있는 것은 라이더컵과 관련이 있다. 조던 스피스, 저스틴 토마스와 리키 파울러는 한동안 미국 골프의 대명사였지만, 그들의 기량은 정체하고 있었고, 결과로 로마에서 열렸던 라이더컵에서 미국팀은 크게 패했다. 미국은 충격 요법으로 다음 라이더컵 캡틴으로 키건 브래들리를 선정했다. 키건은 웬만해서는 스피스, 토마스와 파울러를 뽑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다. 키건 브래들리 캡틴 선정 이후에 저스틴 토마스의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키건 브래들리의 이번 대회 성적도 인상적이었다. 브래들리는 선수로서 미국팀에 재입성하여 라이더컵에서 쌓인 한을 풀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PGA아메리카는 그런 그를 라이더컵 캡틴으로 선정했다. 브래들리는 라이더컵같이 팀 전략이 중요한 대회에서 캡틴을 하면서 선수로 뛰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라이더컵 미국팀 선수 여섯 명은 상위 랭커가 자동으로 선정되고, 나머지 여섯 명은 성적을 고려하여 캡틴이 지정한다. 브래들리는 자신이 자동 선정되는 상위 여섯 명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자신을 선수로 포함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라이더컵의 마지막 플레잉 캡틴은 1963년 아놀드 파머였다. 브래들리가 아놀드 파머의 반열이 아니라는 것은 브래들리도 알고 모든 골프 팬이 안다. 그러하기에 브래들리는 성적으로 상위 여섯 명에 들어서 아놀드 파머 이후에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플레잉 캡틴을 하고 싶을 것이다.
미국 선수들은 페덱스컵 이후에 휴식을 취했지만, 유럽 선수들은 DP월드투어 경기를 소화하느라고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 대부분의 유럽 선수는 참여하지 않았다.
페덱스컵 이후 DP월드투어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는 로리 매킬로이다. 그의 샷 능력과 몰아치기 능력은 세상이 아는 것이고 문제는 일관성이다. 그의 일관성은 US오픈에서의 뼈아픈 패배 이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자신의 전성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로리 매킬로이의 2025년 활약도 기대된다. 올해 PGA챔피언십과 디오픈을 우승한 젠더 쇼플리도 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스윙을 시작하면서 내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히어로 월드 챌린지는 타이거 우즈가 주최하는 이벤트성 대회다. 이 대회를 통해서 내년 시즌을 준비하는 선수들의 폼과 태도를 볼 수 있었다. 한층 유연해진 스코티 셰플러를 견고해진 김주형, 일관성이 향상된 로리 매킬로이, 양대 메이저 챔피언 젠더 쇼플리와 라이더컵 출전 동기를 가진 여러 선수가 어떻게 넘어서느냐가 2025년 PGA투어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골프는 이제 더욱 재미있어질 일만 남았다.
윤영호 골프 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골프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연제호 기자 [email protected]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