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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의 작심 발언 “대표팀, 베테랑 선배 필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하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외야수 이정후가 15일(현지시간) 스프링캠프가 열린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연합뉴스

현재 한국야구 최고의 스타이자 국가대표팀 경험도 풍부한 이정후의 발언이기에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이정후는 KBO리그 데뷔 첫해인 2017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을 시작으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12, 2021년에 열린 도쿄올림픽, 2023년 WBC까지 꾸준히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태극마크를 달고 통산 28경기에 출전하며 타율 .330에 홈런 3개, 22타점을 기록하며 국제무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정작 한국 대표팀은 ‘이정후의 시대’에 접어들며 국제무대에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국야구가 메이저급 대회에서 마지막으로 정상에 오른 것은 2015년 프리미어12 초대 대회가 마지막이다.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는 2006년 WBC 4강, 2009년 WBC 준우승을 기록했으나 최근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4위로 노메달에 그쳤고, 지난 2024년 열린 프리미어12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한국 국가대표팀이 나서게 될 다음 국제 대회는 내년 열리는 2026 WBC다. 대표팀은 최근 류중일 전 감독에 이어 류지현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하며 본격적인 대회 준비에 돌입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이정후가 현실적으로 대표팀에 참가 가능한 국제대회도 WBC뿐이다. 이정후는 “대표팀은 한국에서 야구를 제일 잘하는 선수들이 함께하는 곳이다. 실력이 되는 한 계속 가고 싶다”며 의욕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정후는 대표팀 운영에 대한 걱정과 아쉬움도 내비쳤다. “최근 우리 대표팀 성적이 너무 안 좋았다. 미국에 와서 보니 미국 선수들도 다음 WBC를 단단히 벼르고 있더라.. 우리도 지금부터 준비 잘해야 한다”고 경각심을 나타냈다.

이정후는 최근 국가대표팀이 젊은 선수들 위주로 ‘세대교체’를 추진한다는 명분으로 베테랑을 인위적으로 배제하는 분위기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작년 프리미어12를 보니까 세대교체가 다 됐더라. 그런데 너무 젊은 선수 위주로만 구성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면서 “대표팀은 경험 쌓는 곳이 아니라 그해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가서 대한민국 이름을 걸고 싸우는 곳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정후의 주장은 축구인 이영표와 메이저리그 선배 추신수의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이영표는 이정후가 이야기했던 “대표팀은 경험하는 곳이 아니라 증명하는 곳”이라는 어록의 원조 격이다. 2014년 당시 브라질월드컵에서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축구대표팀이 부진한 경기력 끝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자, “어린 선수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라고 위안하던 당시 홍명보 감독의 이야기를 반박하면서 나온 표현이다.

반면 추신수는 이정후-이영표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세대교체론’을 적극 강조한 인물이다. 추신수는 2023년 WBC 개막을 앞둔 시점에서 대표팀 구성이 베테랑에 아직도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언제까지 김광현, 양현종인가 미래를 기약하려면 노장들은 물러나고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추신수는 실력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베테랑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고, 학폭 논란으로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한 안우진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까지 하면서 여론과 야구계의 뭇매를 맞자 입을 닫았다.

세대교체의 중요성

결과적으로 보면 일장일단이 있을 뿐, 누구의 주장도 ‘틀린 것’은 아니다. 2023년 WBC 당시 대표팀 평균연령은 29.2세로 베테랑 의존도가 매우 높았고, 특히 야수들의 평균연령은 무려 31.3세에 이르렀다. 당시 대표팀은 메이저리거까지 차출한 최정예 전력을 구성하고도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WBC 이후 김현수, 양현종, 김광현 등 기량이 쇠했다는 평가를 받던 베테랑들이 대거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한국은 지난해 열린 프리미어12에서는 선수단 평균연령이 약 24세까지 확 젊어졌다. 이는 2026 WBC와 2028년 LA 올림픽까지 겨냥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표팀의 연속성을 이어가기 위한 포석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젊어진 대표팀은 지난 프리미어12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경험부족으로 고비를 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며 또다시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피하지 못했다.

이정후는 프로 데뷔 때부터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모두 핵심선수로 활약했다. KBO리그 키움에서는 불과 25세에 선배들을 제치고 프로팀 주장이라는 막중한 책임까지 맡았다. 그만큼 베테랑의 역할을 뼈저리게 절감한 이정후로서는 ‘신구조화’를 통한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젊은 선수들은 분위기를 탈 때는 확 타는데, 가라앉으면 이끌어 줄 선수가 없다. 선배가 좋은 활약을 펼쳤음에도 단지 세대교체라는 명분 때문에 어린 선수가 나가는 것은 안 된다”는 게 이정후의 생각이다.

실제로 현재 KBO리그에는 나이로는 노장의 반열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이는 선수들이 꽤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류현진(한화)이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치고 12년 만에 국내로 돌아온 류현진은 복귀 첫해인 2024시즌 28경기서 10승8패 평균자책점 3.87로 국내 투수중 정상급의 활약을 선보였다.

류현진은 2008 베이징올림픽-2009 WBC 등에서 한국야구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국제대회에서도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끝으로는 더 이상 국가대표 출전 경력이 없다.

2013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 유일하게 참가 가능했던 WBC에서는 부상문제 등으로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류현진은 국내 복귀 이후 대표팀 소집이 오면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세대교체 노선이 분명했던 프리미어12에서는 끝내 발탁되지 못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불혹의 포수 강민호(삼성) 역시 2024시즌 은퇴를 앞둔 나이에 3할 타율에 19홈런, 개인통산 7번째 골든글러브 수상과 생애 첫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누구보다 화려한 한 해를 보냈다. 양의지(두산)는 지난해 부상으로 고전했지만 여전히 리그 정상급 포수로 꼽힌다. 이들은 현재 모두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상황이지만, 기량 면에서는 여전히 KBO리그 최정상급으로 꼽힐 만큼 충분히 태극마크를 달 수 있을 만한 선수들이다.

2026년 WBC는 현재 류현진처럼 30대 중반을 넘긴 노장 선수들에게는 태극마크를 달 수 있는 ‘라스트 댄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지금처럼 젊은 선수들이 중심이 되어 장기적으로 세대교체를 이어가야 한다는 방향성은 큰 틀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가뜩이나 선수층이 얇은 한국야구에서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베테랑 선수를 인위적으로 배제하다 보면, 그만큼 젊은 선수들의 부담은 가중되고 오히려 선수선발의 투명성이 흐려질 수도 있다.

류현진-김광현-이정후 같은 선수들이 20대 초반에 일찍 대표팀 주전 자리를 꿰찰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나이 때문이 아니라 철저히 ‘실력’으로 경쟁에서 선배들을 이겨냈기 때문이었다.

기량과 리더십에서 정말로 필요하다고 인정받는 자원이라면 이미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선수들이라고 해도 복귀를 진지하게 논의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올시즌 리그 활약에 따라 기량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대표팀에 안 뽑으면 그만이다. 이정후가 제기한 대표팀 운영의 방향성을 지금부터 한국야구가 심사숙고해 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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