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군단의 거침없는 비상이 이제는 1위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막강한 투수력을 앞세워 파죽의 6연승을 내달리며 눈부신 상승세를 이어갔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한화는 5월 4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5 신한 SOL 뱅크 KBO리그 원정 경기’에서 KIA 타이거즈를 3-1로 제압했다.
이날 경기는 양 팀의 외국인 에이스 빅매치로 눈길을 모았다. 한화의 코디 폰세와 KIA의 제임스 네일은 올시즌 각각 탈삼진과 평균자책점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는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들이다.
두 투수는 모두 이름값에 걸맞는 호투를 펼쳤다. 네일도 7이닝 3피안타 10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타선의 득점지원이 2회 1점에 그친 게 아쉬웠다. 폰세는 7이닝 2피안타 5탈삼진 1실점(비자책)으로 KIA 타선을 틀어막았고 한화 타선이 8회초 채은성의 적시타와 이진영의 희생플라이로 역전에 성공하며 시즌 6승째를 챙겼다. 뒤이어 등판한 한승혁과 김서현도 각각 홀드와 세이브를 추가했다.
이로써 한화는 6연승을 이어가며 시즌 21승 13패로 단독 2위를 지켰다. 같은 날 역시 승리한 선두 LG 트윈스와의 격차는 불과 1게임이다. 한화가 30경기 이상 치른 시점에서 2위까지 오른 것은 2007년(최종순위 3위) 이후 무려 18년 만이다.
한화는 올 시즌 개막 첫 14경기까지만 해도 4승 10패에 그치며 키움 히어로즈와 공동 최하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후 20경기에서 무려 17승 3패를 거두는 대반전을 거두며 무려 8계단을 가파르게 상승하여 2위까지 올라왔다.
한화 돌풍의 원동력은 역시 강력한 마운드에서 비롯됐다. 한화의 팀 평균자책점은 3.20으로 KT(2.75)와 LG(3.12)에 이어 3위다. 한화 선발 투수진은 팀이 거둔 21승 중 무려 17승을 책임졌고, 평균자책점은 3.23으로 KT(2.83)에 이어 리그 2위를 기록 중이다. 선발투수가 소화한 총 이닝은 무려 192이닝으로 KT(203.1이닝)에 이어 2위이며,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 이하)는 18회로 리그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폰세(6승, 1.70) 와이스(4승1패 4.35), 류현진(3승 1패 3.05), 문동주(3승 1패, 3.03)로 이어지는 한화의 선발진은 리그 최정상급이다. 5선발 엄상백(1승 3패, 5.06)의 부진이 다소 아쉽지만 로테이션은 꾸준히 지켜주고 있다.
외국인 투수의 대활약… 부담 덜어낸 류현진·문동주
한화는 1990-2000년대까지만 해도 ‘투수 왕국’으로 꼽히며 수많은 레전드들을 배출했지만, 2010년대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로는 오히려 ‘투수들의 무덤’으로 전락했다. 한화는 전통적으로 외국인 투수 복이 없는 편이었다. 2010년대 마무리투수로 활약했던 데니 바티스타, 선발투수로 강렬한 단기 임팩트를 보여줬던 에스밀 로저스 정도가 있었지만, 당시는 한화가 암흑기를 전전하던 시절이라 영향력에 한계가 있었다. 지난해 한화의 가을야구 탈락에도 믿었던 펠릭스 페냐와 리카드로 산체스의 동반 부진이 치명타였다.
하지만 올해의 폰세와 와이스는 한화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안정적인 ‘외국인 원투펀치’에 대한 갈증을 완벽하게 해소해주고 있다. 특히 1선발 폰세는 4월 9일 두산전에서 6이닝 4실점을 기록한 이후, 두산전 마지막 이닝을 포함해 ’29이닝 연속 무자책’ 행진을 이어가며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폰세는 현재 탈삼진(66개) 단독 1위, 다승(6승)과 최다이닝(53이닝) 공동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올시즌 8번의 등판 중 최근 4경기 연속을 포함하여, 벌써 6번이나 7이닝 2실점 이하의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를 기록 중이다. 이는 한화 전체 선발 투수들이 기록한 9회의 2/3에 해당한다. 벌써부터 한화 역대 최고의 외국인 투수라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덕분에 토종 에이스인 류현진과 문동주가 3-4선발로 내려오면서 심리적인 부담을 크게 덜게 됐다.
불펜 역시 막강하다. 한화의 팀 세이브는 12개로 롯데와 함께 공동 1위를 기록중이다. 지난 시즌 주전 마무리였던 주현상이 부진하자 발빠르게 김서현으로 마무리를 교체한게 오히려 신의 한수가 됐다. 김서현은 19경기에서 벌써 10세이브(1위), 자책점 0. 51을 기록하며 기대 이상의 호투를 보여주며 새로운 수호신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한승혁은 20경기에 등판하여 8개의 홀드(공동 2위)를 기록하며 필승조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최근 6연승을 거두는 동안 한화 마운드가 상대에게 내준 실점은 총 11점(경기당 1.8점)에 불과했고, 모두 3점 이하로 막아냈다. 모두 3점차 이내에서 승부가 갈렸고 이중 4번이나 1점차 접전 승리였다. 이처럼 강력해진 뒷심을 바탕으로, 한화는 올해 7회까지 앞선 경기에서 ’17전 전승’ 행진을 기록하며 경기 막판에는 한번도 역전패를 허용하지 않았다. 반대로 역전승은 무려 12번으로 리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한화는 20세기의 마지막 해인 1999년에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차지한 이후, 21세기 들어 아직까지 우승과 인연이 없다. 특히 최근 17년간은 가을야구에 나간 게 단 1회(2018년) 밖에 없을 정도로 극심한 암흑기에 허덕였다. 무려 5~6년에 걸친 기나긴 장기 리빌딩과 온갖 시행착오를 거쳐, 올시즌 한화는 정말 오랜만에 ‘이기는 맛을 아는 팀’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제 한화가 풀어야 할 마지막 퍼즐은 타선의 파괴력 부족이다. 시즌 초반 1할대를 허덕이던 상황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한화의 팀타율은 .237, 출루율 .313으로 각각 9위에 그치고 있다.
한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1999년과 비교하면 흔히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 이상목 등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투수진만 생각하기 쉽지만, 당시 댄 로마이어(45개)를 비롯해 데이비스(30개), 장종훈(27개) 송지만(22개)등 20홈런 이상 타자만 4명을 배출한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힘도 강력했다.
올해는 노시환이 홈런 2위(10개), 타점 5위(24개)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그 외에는 타격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한화 타자를 찾기가 힘들다. 규정타석을 채운 3할 타자는 전무하고, 그나마 문현빈이 2할9푼2리(17위)로 20위권에 유일하게 턱걸이하고 있다. 외부 FA로 영입한 심우준과 안치홍이 모두 1할대 이하의 부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아쉽다. 6연승 기간 마운드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한화 타선은 총 20점을 뽑아내는데 그치며 경기당 3점을 뽑아내는 것도 힘겨웠다는 게 유일한 옥의 티였다.
이번 주 한화는 내친김에 이제 1위까지 넘보고 있다. 시즌 초반 독주 체제를 구축하는 듯했던 LG가 최근 12경기에서 5연패 한차례 포함 4승 8패에 그치는 부진을 보이며 2위권과의 격차가 급격히 좁혀졌다. 한화는 5일부터 삼성-키움과 6연전을 치르며, LG는 두산-삼성과의 대결을 앞두고 있다. 한화가 연승의 상승세를 이어간다면 LG를 넘어 시즌 첫 1위 등극도 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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