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수단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5개로 종합 15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금메달 우선 기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 12개로 종합 4위,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로 각각 7위와 5위를 차지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소박한(?) 목표다. 이번 파리올림픽 목표는 2020 도쿄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 6개보다도 하나가 줄었는데 선수단 규모가 크게 줄어든 만큼 목표 또한 하향 조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한국 선수단이 굳게 믿는 종목이 있다. 대표적인 효자 종목인 양궁이다. 한국은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 혼성 단체전까지 이번 대회 양궁에 걸려 있는 5개의 금메달 중 최소 3개 이상 따낸다는 목표를 세웠다. 특히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3관왕에 빛나는 여자양궁의 에이스 임시현은 파리올림픽에서도 한국 선수단의 가장 유력한 다관왕 후보로 꼽힌다.
역대 올림픽 금메달 19개 중 18개 싹쓸이
▲ 2024 파리올림픽에 출전하는 양국 국가대표팀 전훈영(왼쪽부터), 임시현, 남수현이 1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출국 전 기념촬영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한국양궁의 위상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특히 여자양궁은 올림픽에서 그야말로 독보적인 실적을 쌓았다. 1984년 LA올림픽에서 개인전이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올림픽 금메달 19개 중 18개를 휩쓸며 독보적인 ‘양궁 최강국’으로 군림했다. 특히 여자양궁 단체전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9번의 올림픽에서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친 적이 없다.
한국 여자양궁은 9번의 개인전 금메달을 따는 동안 한 번도 2연패가 없었다. 물론 ‘원조신궁’ 김수녕을 비롯해 조윤정, 김경욱, 윤미진, 박성현, 기보배, 장혜진, 안산으로 이어지는 뛰어난 궁사들을 대거 배출됐다. 하지만 이들 중 개인전 금메달 2개를 보유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 김수녕이 서울올림픽 금메달과 바르셀로나 은메달, 시드니 동메달로 개인전의 모든 메달을 따낸 것이 최고의 성과다.
한국이 유일하게 여자양궁에서 금메달을 놓쳤던 대회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었다. 당시 아테네 올림픽 2관왕에 빛나는 박성현이 결승에 진출해 8강에서 주현정, 4강에서 윤옥희를 꺾은 홈팀 중국의 장쥐안쥐안을 상대했다. 하지만 중국관중들은 박성현이 활을 쏘는 시간만 되면 호루라기를 불고 페트병을 두드리는 등 노골적으로 경기를 방해하며 박성현의 멘탈을 흔들었고 결국 한국은 처음으로 양궁 여자개인전 금메달을 놓쳤다.
한국 여자양궁이 독주를 이어가자 한국의 양궁 지도자들은 세계 각국으로 스카우트됐고 한국의 기술과 노하우가 해외로 대거 유출되기도 했다. 특히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미국과 일본, 대만, 멕시코 등 무려 8개국의 지도자가 한국사람인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한국 지도자들이 총출동하며 한국의 독주를 막으려 했던 리우 올림픽에서도 한국은 여자양궁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모두 휩쓸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처음으로 혼성단체전 종목이 신설되면서 양궁 종목에 걸린 금메달이 5개로 늘었다. 하지만 새 종목의 첫 금메달 역시 한국의 몫이었다. 한국은 랭킹라운드 기록이 가장 좋았던 남녀부의 막내 김제덕과 안산이 출전해 결승에서 네덜란드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안산은 혼성 단체전을 시작으로 개인전과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따면서 2020 도쿄올림픽 한국선수단의 금메달(6개) 중 절반을 혼자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단체전 10연패 도전
▲ 18일 광주국제양궁장에서 열린 제104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양궁 여자대학부 개인전 결승에서 임시현(한국체대)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 연합뉴스
임시현은 2003년생으로 만 21세에 불과하지만 대표팀에서 가장 풍부한 국제대회 경험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임시현도 한국 여자양궁의 에이스가 되기까지 적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임시현은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이시현과 강채영, 안산, 최미선에 밀려 항저우행 티켓을 따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아시안게임이 1년 연기됐고 지난해 다시 열린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하며 아시안게임 출전권을 따냈다.
그리고 임시현은 자신의 실질적인 첫 메이저 대회였던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개인전과 단체전, 혼성 단체전을 휩쓸었다. 대표팀 막내에서 단숨에 한국 여자양궁의 새로운 에이스로 떠오른 순간이다. 특히 개인전 결승에서는 도쿄올림픽 3관왕에 빛나는 대표팀 선배 안산을 꺾고 정상에 올랐다. 임시현은 연말 MBN 여성 스포츠대상 시상식에서 ‘올해를 빛낸 여성 스포츠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임시현은 지난 4월에 열린 대표 선발전에서도 전체 1위를 차지하며 전훈영, 남수현과 함께 파리행 티켓을 따냈다. 남자 대표팀이 김우진과 김제덕 등 올림픽 경험이 있는 선수들 위주로 출전하는 반면, 여자 대표팀은 3명 모두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이다. 올림픽에서 한국과 경쟁하는 나라의 코칭스태프는 물론이고 국내 언론과 스포츠 팬들 역시 이번 한국 여자양궁 대표팀의 최대 약점을 ‘국제대회 경험부족’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올림픽 경험이 없는 선수들이 출전해 금메달을 따낸 적이 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김경욱과 김조순, 윤혜영이 그랬고 가장 최근에 열렸던 2020 도쿄 올림픽의 안산과 강채영, 장민희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대표팀 역시 올림픽은 첫 출전이지만 ‘올림픽보다 어렵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한 대단한 선수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3관왕의 주인공이자 대표팀의 에이스 임시현이 있다.
한국 여자양궁은 현재 국제대회에서 가장 많은 실적을 올린 에이스 임시현이 유력한 다관왕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1994년생의 베테랑 전훈영과 2005년생의 신예 남수현 중 어떤 선수가 새로운 여왕에 등극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특히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한국 여자양궁이 단체전 금메달을 따내면 전인미답의 단체전 10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여자양궁은 파리에서도 한국 선수단 최고의 효자종목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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