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국가대표팀 선수들이 2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금의환향했다. 대표팀은 25일 카타르 도하에서 막을 내린 2025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복식과 혼합복식 동메달을 수확했다. 사진제공│대한탁구협회
“한국탁구는 경기력과 결과 모두 더 성장할 수 있다.”
오상은 감독과 석은미 감독이 이끄는 탁구국가대표팀이 2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금의환향했다. 대표팀은 전날(25일) 카타르 도하에서 막을 내린 2025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 2개(여자복식·혼합복식)를 수확했다. 지난해 2024파리올림픽 이후 남자부 이상수(삼성생명)와 전지희(은퇴)가 은퇴해 세대교체 과도기를 맞았음을 고려하면 인상적 성과다.
대표팀의 선전에 신유빈(21·대한항공)이 앞장섰다. 오른손잡이인 그는 여자복식과 혼합복식에서 각각 왼손잡이 유한나(23·포스코인터내셔널), 임종훈(28·한국거래소)와 함께 동메달을 합작했다. 대표팀의 에이스다운 활약이었다. 신유빈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플레이를 펼쳤고, 후회 없는 경기를 했다. 멋진 성적을 거둔 것 같다”며 “파트너들과도 자신있게 플레이한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고 도하대회를 마친 소감을 밝혔다.
신유빈이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5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마치고 2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이날 여자복식과 혼합복식 동메달을 들고 기뻐하는 모습. 사진제공│대한탁구협회
●신유빈의 존재는 변수가 아닌 상수신유빈이 지난 2년간 보인 성장세는 인상적이었다. 오른손 손목 부상을 입은 2022년 국가대표 선발전을 놓쳤고, 중국 청두세계선수권대회에도 불참했다. 그러나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이후 탄탄대로를 열었다. 백핸드에만 의존하는 대신, 위력적인 포핸드 공격을 곁들인 올라운더형 선수로 성장했다. 장점인 서브를 극대화해 여자복식과 혼합복식에서 세계적 오른손잡이 선수로 자리잡았다.
스스로는 “부진과 부상에 시달린 기간도 있었지만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내 노력을 믿었다”고 자세를 낮췄다. 그러나 신유빈이 202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세계선수권대회(여자복식 은메달), 2022항저우아시안게임(여자복식 금메달·여자단식·여자단체전·혼합복식 동메달), 2024파리올림픽(여자단체전·혼합복식 동메달) 등에서 거둔 성과는 ‘타도 중국’을 겨냥하는 한국탁구에는 큰 희망이다.
과거 만리장성을 뛰어넘었던 레전드들은 신유빈에게 큰 기대를 건다. 그동안 한국은 대진운, 대회 당일 컨디션, 정신력 등에 주요 국제대회 성적이 좌우됐다. 그러나 변수가 아닌 완전한 상수로 자리잡은 신유빈과 함께라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현정화 대한탁구협회 수석부회장은 “과거 내가 현역으로 뛰던 시절에도 중국과 겨루면 3대7, 4대6 정도로 밀렸다. 지금은 1대9 이상으로 격차가 벌어진 상황”이라면서도 “현재 신유빈은 중국 수준에 근접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중국을 뛰어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석 감독도 “(신)유빈이가 그동안 복식에서 왼손잡이와 호흡을 맞춰왔다. 서브가 강점인 오른손잡이라 백핸드 드라이브가 강한 (임)종훈이와 호흡이 잘 맞았지만, 포핸드 공격이 장점인 (유)한나와 호흡은 장담하기 힘들었다”며 “그러나 한나와 여자복식에선 종훈이와 플레이할 때와는 다른 형태로 경기를 운영했다. 선수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한 모습이 보였다”고 칭찬했다.
신유빈은 대선배들의 격려를 발판삼아 역사를 써보겠다는 의지다. 그는 “도하대회 호성적으로 내 노력에 대한 믿음이 더 생겼다. 이렇게 노력을 계속한다면 더 큰 역사를 이룩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지금처럼 최선을 다해 항상 후회없는 결과를 받아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한나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5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마치고 2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신유빈과 함께 여자복식 동메달을 합작했다. 사진제공│대한탁구협회
●전지희 이후 사라진 왼손잡이들, 유한나의 발견은 큰 수확이다
유한나는 도하대회에서 한국탁구가 수확한 가장 큰 성과다. 실업무대 5년차인 그는 올해가 돼서야 겨우 태극마크를 달았다. 2021년 포스코인터내셔널 입단과 동시에 실업탁구를 대표하는 왼손잡이 선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매번 국가대표 선발전마다 고배를 들었기 때문이다.
유한나는 “사실 국가대표 선발전에 떨어질 때마다 많이 힘들었고, 탁구가 하기 싫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금세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면서 버텼더니 오늘같은 날도 있는 것 같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포기하지 않은 보람이 있었다. 유한나는 올해 대표 선발전을 통과했다. 때마침 전지희의 은퇴로 왼손잡이가 부족한 대표팀 사정상 금세 기회를 받았다. 올해 3월 WTT 인도 첸나이대회에서 신유빈의 여자복식 파트너로 낙점받은 그는, 도하대회에서도 신유빈과 조를 이뤄 생애 첫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언뜻 보기엔 신데렐라 스토리 같지만, 유한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준비된 스타라고 말한다. 대회 전 전혜경 포스코인터내셔널 감독은 “(유)한나가 실업무대 입단 후 백핸드 불안이 줄었고, 수비도 나아졌다. 무엇보다도 멘탈이 탄탄해졌으니 기대해도 좋다”고 장담했는데, 이는 적중했다. 석 감독도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나는 ‘자기 것’을 갖고 있는 선수라 제 역할을 해주리라 믿었다”고 털어놓았다.
전지희와 유한나는 정확히 10살 차이다. 둘 사이에 최효주(한국마사회), 김서윤, 심현주(이상 미래에셋증권) 등 왼손잡이 선수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들 모두 ‘국내용’ 딱지를 떼지 못했다. 유한나 이후에도 김성진(삼성생명) 정도를 제외하면 두각을 보이는 왼손잡이가 없다. 유한나가 지금처럼 대표팀에 자리를 잡는다면 석 감독의 복식 조 구성 고민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유한나는 “실업무대 입단 후 복식 파트너인 양하은(화성도시공사) 언니에게 탁구를 새로 배우다시피 했다. 세계대회 복식 입상 경력이 있는 선배 밑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며 “지금 성적에 만족하지 않고 다가 올 2026아이치·나고야아시안게임 등 주요 국제대회들을 계속 겨냥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임종훈이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5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마치고 2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그는 신유빈과 지난해 2024파리올림픽 혼합복식 동메달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혼합복식 동메달을 합작했다. 사진제공│대한탁구협회
●‘탁구에 귀의한 수도승’ 임종훈, 도하대회 이후 콘셉트는 회복
“내가 지금까지 가르친 선수 중 탁구욕심이 세 손가락 안에 든다.”
유남규 협회 실무부회장(한국거래소 감독)은 임종훈을 탁구 열정이 뛰어난 선수라고 표현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동산고 1학년 시절인 2013년 탁구공부를 위해 스웨덴으로 1년동안 유학을 다녀왔고, 2024파리올림픽 전후로는 소속팀 경기가 없는 시기엔 프랑스리그에 뛰며 꾸준히 유럽탁구를 체험해 왔다.
그 사이 역경도 적지 않았다. 학창시절 포핸드 입스가 찾아와 긴 기간 동안 고생했고, 2022년 말엔 전 소속팀 KGC인삼공사와 재계약에 난항을 겪어 개인자격으로 2023년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임종훈은 “개인자격으로 대표 선발전에 나설 땐 혼자 협회에 연락해 참가 신청을 하고 숙소를 예약했다. 이후 차 트렁크에 모든 짐을 실어 선발전이 열리던 충남 청양으로 내려가기도 했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매사 탁구에 진심이었기 때문에 주무기인 백핸드 공격 외에도 포핸드 공격까지 장착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매 국제대회에 나설 때마다 ‘노메달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목표를 이뤄왔다. 탁구인생의 동기부여로도 ‘라켓을 내려놓는 날까지 태극마크를 다는 것’을 삼을 정도다.
임종훈은 2022년부터 신유빈과 호흡을 맞춰 세계적 혼합복식 조합으로 거듭난 뒤엔 “비중국 조는 모두 이기겠다. 중국 조를 만나서도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며 “왕추친-쑨잉샤(중국) 조가 결성 후 무패라고 들었다. 그 아성에 도전하겠다”고 자신한다. 이미 시선은 아이치·나고야아시안게임과 2028LA올림픽을 향해 있다. 다만 대회 준비 과정은 지난 2~3년과는 다소 다른데, 그동안 해외리그 경기 출전으로 국제경쟁력을 높여왔다면 이젠 회복에 집중해 보다 완전한 몸 상태로 국제대회에 출전할 참이다.
인천국제공항│권재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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